훈민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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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여[편집]

세종께서 만든 한글 오픈 베타 릴리즈. 세종은 이전까지의 문서언어가 한국어의 음성언어와 맞지 않는 한문으로 되어있는 것에 문제를 느꼈다. 다시 말해 한문은 한국어를 표현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자보다 훨씬 알기 쉽고, 자음과 모음을 구별하여 이를 조합해 많은 소리를 구현할 수 있는 문자를 기획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의 발명은 한국어 화자인 여러분이 이 문서를 보고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옛글[편집]

자모 합쳐 스물 여덟 자를 조합해 많은 소리를 글로 적을 수 있다. 현대에 쓰지 않는 글자들이 많이 있다. 세모모양이나 이응에 꼭지가 달리거나 히읗에 위의 획이 하나 없거나 쌍자음을 쓰는 요령이 지금과 많이 다르고, 모음 또한 아래아나 조합된 모음들은 지금과 많이 다른 모습으로 나온다.

훈민정음 언해[편집]

한글의 특징중 하나는 누가, 언제, 어떻게, 왜?? 만들었는지 자세히 기록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한글날을 지낼 수 있는 이유가 한글이 언제 반포되었는지 기록에 있기 때문이다. 그 기록 가운데 하나가 바로 훈민정음 언해이다. 세종 본인이 직접 저술했다고 한다. 글을 만든 사람이 직접 훈민정음의 사용례와 그 철학을 써 담아놔서 브라이언 커니핸데니스 리치의 The C Programming language와 비슷할까?

제일 처음은 世宗御製訓民正音 製(제)는 글을 지음이니, 御製(어제)는 임금께서 지으신 글이다. 訓(훈)은 가르침이고, 民(민)은 百姓(백성)이고, 音(음)은 소리니, 訓民正音(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정한 소리라. 라고 써있다. 구성은 옛 서당에서 구결을 달 듯이 한자 옆칸 마다마다 훈민정음으로 소리를 표시했고, 그 한문 중간중간에 토를 달아 한문 문장의 이해력을 높였으며, 한자어에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따로 위와같이 훈민정음으로 설명해 놓았다. 예를 들면 "이호중국하야" 그 옆에 "이는 다름이고, 호는 아무거에 붙어 쓰는 자, 중국은 황제께서 계신 나라다. 우리나라에서 평소에 강남이라 말 하는 곳." 이렇게 설명을 다 붙여 놓았으며, 고 옆에 "중국과 달라" 라고 간결히 한글패치 했다. 이로써 사용법은 물론이고, 이 글의 내용으로 왜 이 글을 만들고 이 책을 썼는가가(백성들의 문자 정보 전달 용이 및 자신의 글의 예와 같이 현토에 적극적으로 사용, 한문교육의 편의) 낱낱히 적혀있어, 책으로도 아주 좋은 책으로 꼽힌다.

언해에서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든 이유는 우리가 알다시피 한국어는 한자로 표기 하기에 적절치 않다는 것과, 이런 난해함 때문에 배우지 못한 백성들의 문자생활에 한계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지배계층, 그것도 왕이 큰 제국의 문화를 미루고 독자적인 문자를 백성을 위해 만든 것은 세계적으로도 사례가 거의 유일하다. 또한 그 창제의 이유와 원리를 자세히 설명하고 백성들에게 문자생활을 베푸려는 의지가 기록으로 남아있는 것 또한 유일하다.

혜례본[편집]

보다 심층적으로 왜 만들었냐 보다 어떻게 만들어졌냐에 촛점이 맞춰진 책으로 입모양에서 나오는 소리등을 상세히 연구한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져, 현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명서이다. 혜례본 초간본은 간송미술관에 보관되어 있다.

보급[편집]

빠르게 이뤄져 대중의 일상적인 문자생활에 사용되었다. 양반가에서는 특히 교육을 목적으로, 책을 해설하고 한자를 배울 때 폭 넓게 이용했다. 또한 중국어 등을 배울 때도 당시 중국어의 소리를 표현해서 학습효율이 높았다고 한다. 궁궐 내에서 특히 보급이 빨랐으며, 조선 후기엔 한글로 여행 수필을 쓴 여류작가가 등장하기도 했다.

창제 당시 반대를 하던 관료들 조차 상소에 세종의 성과를 찬미했으나 반대를 한 까닭으로 한자 구사능력이 저하되거나, 명과의 외교를 걱정하거나, 백성들이 궁핍한 이유는 글 때문만은 아니라는 정도였다. 이런 상소를 올린 최만리 같은 관료들은 의금부에 갇혔다가 딱 하루 만에 풀려났다. 사실 반대도 아니고 저런 점들이 염려가 되니 살피라는 상소였다. 이는 다시 생각해 볼 여지도 있는데, 세종은 조선왕조에서도 가장 왕권이 강하던 당시의 군주였다. 감히 관신들이 훈민정음 갖고 개기질 못했다고 볼 수도 있다. 게다가 세종은 랩배틀을 좋아하던 달변가라 조금만 훈민정음 갖고 뭐라고 했다간 세종의 말빨에 개털리던지 했다. 왕이 몇 년에 걸쳐 개고생해서, 완벽한 철학으로 엄청난 걸 만들어 버렸는데 굳이 반대를 할 이유도 없었고, 설령 한글 반포를, 몇 개 상황을 우려하는 위 같은 온건한 상소가 아니고, 극렬히 결사 반대했다간 진짜 뒤진다. 양반 사대부들이 훈민정음 사용을 반대했다고 배우나, 사실은 거짓인 것이다.

디자인[편집]

정사각형 꼴에다가 삐침과 파임을 전혀 배제한 디자인으로, 먹과 붓을 사용해 글을 쓰는것은 물론 목탄과 종이, 나뭇가지와 흙판 등 여러 것들로 글자를 쓸수 있게 간결한 모양으로 만들어놨다. 자형은 옛 전서체를 모방했다고 한다. 아무런 장식 없이 획 하나하나가 소리를 내기 위한 기호로 쓰이는 것이 가장 눈여겨볼만 하다. 당시로썬 생각해내기 힘든 모더니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