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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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여[편집]

마르틴 루터를 시작으로, 로마 가톨릭의 권위와 부패를 비판하는 풍조가 일어났고 그로 인해 종교적 사상이 깨어나기 시작한 그리스도교의 혁명시대.

설명충[편집]

부패를 경계하며, 모든 사람은 죄인으로 동등한 것, 복음을 널리 전할 것.

마르틴 루터[편집]

16세기 초, 안그래도 만연해있던 가톨릭 사제들의 부패, 그것으로 모자라 이제는 면벌부라는, 죽어서 천국에가는 길을 돈으로 산다는, 엽기적인 수단으로 재산을 탐하는 고위 사제들의 파행을 그 가톨릭신부였던 마르틴 루터는 신앙인의 양심으로써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결국 그는 1517년, 95가지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이유를 들어 정면으로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타락, 진리에 대한 모독에 반박하고 나섰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시작이다.

사실 이 면벌부의 유행은 당시 그 신도들도 책임이 없지 않다. 자신의 죄가 있다면 마땅히 뉘우치고, 진지하게 자신을 성찰하고, 신에게 고백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그냥 돈 좀 들여서 면벌부로 죄를 씻고 구원을 받아 천국가겠다는 속편하고 역겨운 생각으로 신을 섬겼던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사제의 책임이 크다. 민중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으려고 했으며, 그저 그들에게 자신들 입맛에 맞게 성경을 읽혀주고 돈을 갈취하고 있었다. 같은 맥락에서 면발부도 유행했을 것이다.

결론은 믿음을 핵심키워드로 가져가면서 믿음없이 돈으로 죄를 씻기만 원하던 사람들에게 핵직구를 날린 것. 그리고 이것을 조장하는 가장 큰 것은 민중을 성경에서 멀어지도록 만들고 하나님을 높이기보다 자신들 권위 높이기에 급급했던 가톨릭 사제들이였다.

이 사건은 유럽 전체에 소문을 탄다. 여러 학자들이 이 잘못된 가톨릭의 행태에 반대하는 것에 동참했다. 역시 많은 반동도 있었다. 루터는 이 일로 이단으로 찍혔고 파문당했다. 어떻게 보면 죽지 않은게 다행.

그는 그러면서 라틴어로 된 성경을 자신이 살던 독일 일반 군중의 말로 번역하기에 이른다. 이 언어는 현대 독일어의 표준을 제시하였다. 그는 모든 대중이 성경을 읽고 그들이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한국 개신교와는 차원이 다른 탈 권위주의이다.

믿음은 구원?[편집]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로마서 1장, 바울

나쁜 짓 하면서 하나님만 믿으면 구원이다라고 말하며 기독교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기에 무엇을 믿고 무엇을 행하는지를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이다. 그냥 하느님이 나 구원해 줌 이러면서 믿고 헌금이나 뜯고 성추행이나 하고 하면 과연 하느님이 그에게 천국의 영원한 삶을 약속할까? 그런 사람들이라면 마땅이 지옥행 특급열차를 탄다. 왜냐하면 그는 신과 예수의 말을 이용해 인간 세상의 재물과 떡치는 것을 탐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런 자들은 신이 벌을 주는게 아니라 더 큰 타락으로 가게되도 바로잡지 않고 내버려 둔다고 했다. 상홍아 지옥은 편하니?

말 그대로 행함은 믿음의 지표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다만 여기서 또 걸리는 것이 구약의 율법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니 믿는다면 무릇 몽땅 지켜야 하느냐? 라는 물음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에 대해 예수는 생전에 율법으로 약자를 옭아매는 유대교 랍비들의 행태를 비판했으며, 바울은 인간의 율법을 행함으로의 구원이 아니라 예수의 죽음을 통한 구원의 확신을 강조했다. 이는 예수의 죽음으로 우리가 구원받았으니 그의 뜻을 감사하게 여기고 그의 뜻을 따르라는 이야기이지 무조건 믿기만 하면 구원이니까 막 살아도 된다가 아니다. 그런 믿음은 믿음이 아니다.

장 칼뱅[편집]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서”

다섯가지 유일함 중, 장 칼뱅

루터의 사상에 동참한 그는 여러 가르침을 폈는데, 그가 쓴 책 기독교 강요를 쓴 후 프랑스와 교황의 적으로 삼아져서 쫓기듯이 도망다녀, 스위스 제네바에서 현대의 목사들처럼 사역을 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저 위에 군림하여 혹세무민하는 자들은 신이 가증스럽게 여기며, 진실로 신을 믿고 성경의 도리를 행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천국을 약속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예정설이다. 간혹 천국과 지옥에 갈 사람이 정해져있다고 딱 잘라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맞지 않다.

그는 루터와 같이 성경 복음에 충실한 온전한 믿음을 주장했다. 허나, 루터는 가난한 자와 과부를 돕자고만 했으나 칼뱅은 왜 가난한 자가 생기는지, 왜 과부가 그렇게 핍박받아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그는 비록 세상에 신분이 있을지언정, 전지전능한 신의 앞에서는 인간은 모두가 죄인이며, 그렇기 때문에 죄를 뉘우치고 열심히 성경에서의 구원에 대한 복음을 믿고 신이 자신을 구원한다고 확신한다면 당연히 구원받는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속세의 신분과 귀족들의 권위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한다. 당시 시대의 상황으로 본다면 대단히 파격적.

그는 매우 금욕주의적이였고, 물질을 탐하는 것을 역겨워했다. 또한 그리스도교에 기반한 예언 등(특히 목회자)은 성경의 역할을 축소시키기 때문에 거부했다. 현실적으로 성경을 보되, 성경의 주된 가르침은 이웃을 사랑하고, 금욕하고, 부패를 경계하고, 오직 믿음으로 인한 구원인 것이니 굳이 이를 과학적 근거를 들어 의심하지 말자는 것이다(성서무오설). 이는 장로회로 계승되어 오늘날에 이른다. 근데 한국의 장로회는 왜 그모양이지.

결과[편집]

복음과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진 사람은 나빠지려고 해도 나빠질 수 없다는 것. 그 이유는 신의 의로움을 믿음으로 입었기 때문이다. 이런 패러다임을 우리는 이신득의, 복음주의라고 한다. 모든 이들은 신앞에서 죄인으로써 동등하다는 이치와, 역시 이 때문에 모든 사람은 신에게 구원받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만인제사장설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로 인해 개신교가 나오게 되었고 만인제사장주의는 개신교회들의 기본적인 교리가 되었다.

위의 학자들은 모두들 죽을 각오로 그저 신실한 믿음과 그 믿음을 모두에게 전하고 싶었던 순수한 마음으로 그러한 일들을 했다. 실제로 종교개혁의 과정에서 많은 신학자들이 이단이라고 손가락질 당했고, 또 죽었다. 그러니까 이런 분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교회를 만들 책임이 모든 개신교 신자들에게 존재한다. 왜냐하면, 개신교는 만인이 제사장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개신교의 부패에 대한 모든 책임을 그냥 먹사와 한기총에 돌리는 것은, 개신교도들로써 부끄러운 일이다.

의의[편집]

이 것이 먹힌 계층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당연히 왕과 귀족, 사제들에겐 먹히지 않았을테고 일반 군중에서 먹혔다. 신학은 계속 바뀌어왔다. 귀족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마케팅을 했지만, 판매대상이 달라졌기 때문에 그에 대한 마케팅전략을 설파한 것. 나중엔 혼전순결에 대한 한기총의 입장이 달라질 것을 기대한다.

같이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