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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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여[편집]

한반도에서 만주로 건너가 정착한 사람들의 자손들.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소수민족을 중국 조선족이라고 한다.

분포[편집]

길림성에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고, 특히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많이 있다. 특히 연변은 청나라 때부터 하도 한인들이 많이 살았던 데다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에 상당히 이바지한 바, 1947년에 최초로 소수민족의 자치주가 되었다. 그 외에도 요녕(남만주), 흑룡강 등에도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서울 구로의 대림역 쪽에서 많이 모여서 살고 있다.

그 외의 국가에서는 주로 중국 본토 출신 중국인들이 많이 사는 곳에서 살고 있는데, 캐나다에는 온타리오 주 마컴 등이 있다. 영미권에서 한국어, 중국어, 영어가 가능한 처지로 생활의 활로가 상당히 열려있는 편이다.

역사[편집]

조선인들이 만주로 흘러들어간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 이미 흥선대원군이 당백전 뿌리던 시절 이전에 많은 사람들이 만주로 몰려갔는데, 이 지방은 청나라가 여진족의 발상지로써 그린벨트로 묶어놓은 곳이였다. 아무리 강력한 중앙집권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도 중원에서 먼 만주까지 전부 관할을 할 수 없는 노릇이였다. 결국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틈을 타 살기 힘든 헬조선을 탈출한 조선인들이 남만주(요녕), 북만주(길림), 간도, 연해주 등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다. 이런 추세가 당백전 인플레이션과 함께 조선이 지옥불반도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엄청난 수의 조선인들이 만주로 흘러들어간다.

이런 유입 뉴비들이 꽤 많은 걸 청나라인들이 모르던 게 아니였다. 처음에는 밀입국자를 처벌도 해보고 지금 중국 처럼 탈조자들을 도로 조송시키거나 그 사람들이 일군 농산물을 압수하기 까지 했으나, 군데군데 만주족들이 살던 마을에 세경살이를 하던 조선사람들이 점점 조선인들이 흘러들어오니까 끼리끼리 똘똘 뭉치기 시작하면서 도저히 이 사람들의 권익을 수용해주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당시 만주에 유입되던 엄청난 수의 조선인들은 거기 살던 만주족 원주민보다 한자를 읽을 줄 아는 식자층이 많았고, 조선과 청나라를 오고 가던 보부상 행상인들도 많았을 테니 장삿속이 밝은 사람들도 많았다. 특히 간도라고 부르는, 북만주 지역에는 함경도 출신 포수들이 수렵을 해서 가죽을 팔아 생각보다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굴러들어온 돌들이 박힌 돌들을 몰아내던 상황이였다. 결국 청나라는 민족 동화 정책으로 동네 대표로 청나라인을 선출해 세우는 지극히 중화인민공화국 스러운 방식으로 관리를 하게 되는데, 이미 만주에서 산전수전 거쳐서 생활하던 중국 관화를 할 줄 알던 사람들을 바지 청나라 사람으로 세우고 변발을 시켜 이 사람의 자식 등으로 가족관계등록을 하게 되며 바지 청나라 사람의 조선 성을 물려받아 만주계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런 상황은 일제강점기에도 계속되는데, 일제에 의해 만주에 철도가 세워지면서 한반도 사람들이 건설 용역으로 유입이 되기도 하고,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도시화 되고 있던 만주로 돈을 벌러 가는 사람들도 꾸준하게 흘러 들어갔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조선족인 윤동주는 이 당시에 이미 그의 고조 할아버지가 만주로 떠난 뒤의 4세대 였다. 그가 일본 유학을 하며 썼던 시 '별 헤는 밤' 에 그의 당시 만주의 풍경이 간접적으로 나오는데, '패, 경, 옥 이런 이국소녀들의 이름' 라는 말이 나온다. 그가 만주에서 소학교를 다녔던 1930년대에 중국 여자애들은 만주 출신인 그에겐 '이국소녀' 였던 것이다. 한반도인의 디아스포라 이후에 만주는 이 정도로 조선인들의 영역이 되어있었다.

이렇게 되니 독립군이 만주로 향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였고, 일제의 괴뢰 만주국이였던 때에는 일제가 독립군을 진압하고자 연변을 공격하는데 이 때 벌어진 전투가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 등이다. 봉오동에서 얼마나 저항이 거셌는지 일제가 독립군 진압에 실패하자, 연변의 민간인이 살던 동네들에 대규모 학살을 강행하는데 이게 훈춘 사건 등이 있었던 간도 참변이다. 청산리 대첩의 무대도 만주였다.

현재[편집]

독립 후에 만주에 살던 조선인들은 한반도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이미 오랜 세월동안 그들은 만주에서 살았기 때문에 한반도는 그들의 연고지가 아니였다. 이건 재일교포, 재미교포 등도 마찬가지이다.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과 언어와 역사적인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지만, 정작 한반도 내의 문화와 사회구조는 이들에게 전혀 생소하다. 이건 한반도가 두 체제로 분단된 후에 더욱 심화된다.

아무리 음식, 언어, 역사 등의 특징을 같이 가지고 있다고 해도, 지금의 한반도는 그들의 조상이 만주로 건너가던 시절의 한반도와 매우 다르다. 대개 그 곳은 북한일 것이고, 조상이 남한 출신인 조선족들 또한 남한을 돌아가야 할 곳으로 생각해야만 하는 이유는 전혀 없다. 한반도 한인들과의 결정적인 생각의 차이이다. 한인은 한국에서만 살고있다고 생각하는 한반도 한인들의 편협한 인식으로 재외동포들을 무조건 한반도 한인들의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사고의 차이가 낳은 결정적인 실수가 국민의 정부 시절 중화인민공화국인 중 조선족에 한하여 대한민국 출입국을 자유롭게 한 일인데, 조상 땅을 자유롭게 왕래하라는 본래의 취지와 다르게, 경제가 중국보다 발전된 한국에서 경제 활동을 하고자 유입되며, 방문 입국자로써 허가되지 않은 노동을 하게 된다. 이러자 비자 문제로 발목잡혀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되는데, 2000년대 부터 급증한 한국의 사기 범죄 집단에 엮이기에 매우 취약한 계층이 되었다. 말이 어느 정도 통하는 불법 노동자들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끌리는 게 이상한 게 아니다. 이 외에 문화적인 차이로 조선족들이 되려 중국인 이라는 정체성으로 자기들끼리 자신들을 혐오하는 한국인들에게 적대감을 느끼며 뭉치게 되어, 이런 폐쇄적인 커뮤니티가 한국인들에게 더욱 안 좋은 인식이 뿌리박혔다.

문제는 대한민국 교육이 국가와 민족의 구분을 대중에 설명하고, 과거 정세가 혼란할 때 발생한 대규모 디아스포라와 이로 생긴 재외동포들의 역사 인식을 환기하고, 국내 조선족의 상황과 여건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매우 적다는 것이다. 조선족이고, 고려인이고, 많은 나라에 퍼져있는 재외동포들의 자손들이 이제 경제활동을 위해 한국에 와서 생활을 하고 있는 지 상당히 오래된 형편이다. 이제부터라도 이런 교육에 신경을 쓸 때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이미 IMF 1인당 구매력이 일본을 넘어섰다가 말았다가 하고 있는 경제 대국에, 자타가 공인하는 문화강국이다. 이런 나라에 차별은 어울리지 않다.

여담[편집]

조선족의 어린이 자녀들은 한국적이 아니라서 방학 때 부모와 같이 한국에 와 있을때 불편한 점이 몇 가지 있는데, 부모는 한국에서 조선족으로 외국인 등록이 되어있어 한국에서 한국법으로 일부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어린이들은 부모들과 달리 단지 여행목적으로 와있는 거지 영영 살기 위한 비자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외국인 등록을 하지 못한다. 게다가 조선족 어린이들의 경우 한국말을 거의 할 줄 모르기 때문에 길을 잃어도 중국말을 하는 경찰이 있지 않는 한 미아가 되었을 때 처리가 어렵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어린이용 교통카드를 만들려면 본인인증을 해야하는데 T MONEY의 경우는 본인확인을 I-PIN이나 핸드폰으로 하기 때문에 어린이 등록이 아얘 불가능 하다. 이건 한국 어린이들 역시 마찬가지로 간혹 핸드폰이 없는 초딩들은 어린이용 교통카드도 못만든다.

유명 조선족[편집]

  • 윤동주: 용두레 명동촌 출신. 지금의 연변 룽징시. 엄밀한 의미에서 '중국 조선족' 은 아닌데, 살아생전 중화인민공화국 사람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 백청강: 연변 훈춘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