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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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여[편집]

보통명사는 수도, 도읍 등의 순 우리말. 고유명사는 대한민국의 수도인 도시의 이름. 일본의 서울은 동경이다. 중국의 서울은 북경이다. 한국의 서울은 서울특별시이다.

한국의 수도[편집]

영어로는 Seoul이라고 쓰며, '서울에서 나온', '서울의' 라는 의미의 형용사형으로 Seoulite이다. Seoulite가 명사로 쓰이면 서울 사람이 된다. 요즘 중국어로는 首尔(Shǒu'ěr)이라고 하며 옛날 중국어에선 汉城(Hànchéng)이라고 했다. 어원은 위와 같이 도읍의 순 우리말이다.

어원[편집]

신라의 수도 경주의 우리말 서라벌에서 유래했다는 설. 서라벌 자체는 철 생산지 라는 의미를 가졌다. 서라벌을 훈차한 이름이 금성(金成, 쇠벌)이라는것은 유명하다. 삼국을 신라가 통일했으니 지극히 지당한 어원일 수 있다.

그 후 후삼국시대에도 각각의 도읍은 서울이라고 불렸으며 고려시대 개막 이후로도 개경은 서울로 불렸다. 조선에는 지금의 서울특별시 사대문 안 지역에 서울을 차렸다. 한자명은 서울이라는 뜻의 한자(서울 경, 京)없는 한성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졌다. 큰 도시라는 뜻의 한자 음차로 유추된다. 대중은 이때도 조선의 서울을 서울이라고 불렀다.

한자문화권 국가중에선 수도의 이름이 한자이름이 아닌 곳은 서울이 유일하다. 심지어 북한도 자기네들 서울은 평양 혹은 류경이라고 한자어를 쓴다.

서울특별시[편집]

아마 이 문서를 보고있는 사람이 20%의 확률로 살고 있을 도시. 위의 어원을 생각해보면 약간 이상하다. 수도를 수도특별시라고 부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근데 한자로 이루어진 말인 경기도의 경기(京畿)도 뜻은 수도권 이라는 뜻과 99.99% 일치한다.

조선시대[편집]

역성 혁명 이후에 천도를 계획하면서 도시가 구획되었다. 그래서 사대문이 생겼고, 그 안에 명나라의 자금성을 쏙 빼닮은 궁궐이 지어졌다. 지금의 세종로인 육조거리는 남대문으로부터 직빵으로 이어져있다. 이 길로 전차도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뚫었다. 일본이 남으로 쳐들어올지 꿈에도 몰랐던 조선은 역시나 그 일직선로로 궁궐이 일본에 의해서만 두 차례 활활 타올랐다.

일제강점기[편집]

일제강점기엔 일본식 한자어로 개칭되며 경성(京城)이라고 불렸다. 행정단위는 부였다. 나름 큰 도시였다는 것. 나름 일본인들도 많이 들어와 살았다. 철도가 서울을 중심으로 깔리기 시작했다. 아마 서울을 완전히 자신들의 도시로 만들어보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근데 EPIC FAIL...일본이 경복궁을 허물고 조선총독부 건물을 심혈을 기울여 지었다. 아마 자신들이 다시 섬에 갖혀 살 일은 없을 거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EPIC FAIL. 사대문의 성벽이 허물어지고 전차 노선이 연장 및 증설되었으며 몇몇 도시와 통합되어 현재의 서울의 모습에 가까워졌다.

해방 이후[편집]

당연히 서울로 개칭되었다. 전쟁중에 북한에 서울을 점령당해 잠시 수도의 지위를 잃었다가 휴전 후 수복한 서울은 다시 한국의 서울로써 지위를 얻고 그 후 지금의 서울특별시가 되었다. 광화문 문패를 모 대통령이 한글로 썼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자동차가 많아지자 도로를 정비하며 전차노선을 철거했다. 버스가 주요 대중교통수단으로 자리잡았고 지하철과 전철이 서울 전역에 깔리기 시작했다. 문민정부 시대때 총독부 건물을 아깝게 다 뿌셔버리고 경복궁을 다시 지었다. 이명박 시대때 남대문이 소실되었다가 당대의 기술을 총동원해 전통성을 유지하며 3년만에 복구 성공.

지방자치[편집]

서울특별시장은 장관급 공무원이다. 원래 대통령 임명으로 하다가 문민정부 이후 민선으로 뽑는다. 각 구청장 또한 지방선거에서 선출된다. 대한민국 국민의 1/4가 사는 도시인 만큼 자잘자잘하게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

특징[편집]

남한에서도 북서쪽에 위치한 도시이기 때문에 교통과 물류의 중심보다는 정치적인 입지로 큰 도시가 되었다. 말 그대로 원래 큰 도시였기 때문에 해방 후 분단 이후에도 서울은 서울로써 확고했다. 1974년, 종로를 포함한 도심권과 여의도를 포함한 영등포, 강남3구로 이루어진 3핵 도시계획안을 도시설계가 김형만 교수가 제안했고 그대로 지금까지 도심, 여의도, 강남 3핵 도시가 되었다. 이 세 도시권을 모두 관통하는 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 순환선은 그야말로 서울 교통의 중심이다.

2000년대 이후 서울 조경[편집]

2000년대 이전과 이후에 서울시는 그 모습이 상이하다. 그야 말로 상전벽해인데, 띵바긔의 도심 재정비로 대규모 재건축과 토목사업을 시행해 서울을 심시티 하기 시작했고, 오세훈이 뒤를 이어 서울시 디자인 정책으로 쓸데없이 미려한 모습을 만든다. 복잡하고 좁은 도심의 골목길, 높은 건물에 다닥다닥 붙은 간판들이 여행객들에게 가장 인상적인, 고유한 서울의 모습이였는데, 그걸 이 둘이 파괴했다는 평이 있다. 다만 나름 도시 미관의 질서를 만들려고 시도한 점에 있어선 좋은 평가를 받는다. 또 경복궁 재건과 야간 개방 등 문화유산을 관광자원화 하는 노력은 높이 평가받는 부분이다. (웃긴건 남대문이 오세훈 때 화재를...) 그에 따른 성과도 있었고. 가장 평이 극과 극으로 갈리는 것은 광화문광장 재조성이다. 단, 이 모든 것들이 (눈에 확 띄는) 치적을 위해 상당히 단기간에 행해져 서울시의 빚이 좀 많아졌다는 것. 외국의 도시 미화 사업의 진전도를 보면 답답해서 속터질 지경인 거에 비하면 차 막히는걸 엄마 잔소리보다 싫어하는 한국 사람들 성깔에는 이런게 좀 더 시원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광화문광장[편집]

오세훈이 2008년부터 육조거리를 재조성하면서 광화문광장을 지었고, 세계에서 가장 큰 중앙선 분리대가 되었다. 2003년에 덕수궁 미대사관 바로 앞이라는 이유로 촛불시위가 시작된 이래 시위는 광화문 앞에서 하는게 거의 전통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그게 광화문광장으로 계승되었다. 서울시 조례상으로는 문화재에 너무 가깝고, 미대사관과 가깝다보니 시위 허가도 나오기 힘들다.(시장이 누구냐, 왜 시위하냐에 따라 다르지만) 지금의 광화문광장이 시위의 아이콘이 된 것은 희한하게도 서울시 안에서는 시청의 허락 맡고 시위를 해야하는 서울시 조례와 신고제를 보장하는 그 상위법인 집회시위법과 헌법, 보행자가 도로 통행을 방해하는 것을 규제하는 도로교통법, 일단 모이고 보는 시민들의 행동이 전부 다 불일치하는 재밌는 경우이다. 그렇다. 시위는 머릿수에 따라 그 성패가 갈린다. 적극적인 시위참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