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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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여[편집]

유신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과 그의 친필

박정희(朴正熙, 1917.11.14 ~ 1979.10.26)는 대한민국의 군인, 교육자, 정치인이며 제 6대 ~ 9대를 연임했던 전 대통령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계획적인 경제개발로 한국의 전체적인 빈곤을 해결 한 것을 칭송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독재와 반민주적 정치체제에 대해 비난을 받기도 한다. 정말 어지간해선 이런 사람을 보고 경제살렸으니 그만이지 라고 하긴 어려운데, 그 그지 나라를 조금이나마 사람 살만한 곳으로 만든건 부정할 수 없는 공이다. 간호사, 광부 파독해서 외화를 보충하고 차관을 들여와서 경부고속도로를 깔고, 일제 피해자들에게 가야할 보상금을 받아야 했던 한일조약에서 이 피해 보상액을 말도 안 되게 싸게, 그것도 차관으로 가져와서 제철소를 짓는다. 이것들의 포텐이 80년대에 터져 한국은 세계적인 경제대국이 되었다. 답답한 일이다. 호는 중수(中樹).

요시! 토바츠다![편집]

만주군관학교에 들어가기위해 박정희는 천황에게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 할 것이라는 내용의 혈서를 쓰며 지원했고, 결국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 임관한다. 복무 중 일본의 패망으로 소련군의 포로로 잡혔다가 도망쳐나와 고향 경북 구미로 간다.

빨갱이가 되다[편집]

그렇게 다시 미군정 하 한국의 군인이 된다. 당시 대구는 한국의 모스크바로 불릴 정도로 노동운동세력이 크게 자리잡았었고, 조선노동당이 지지받고 있던 상황이였다. 역병에 기근까지 있던 대구경북지역에서 미군정에 반발하며 총파업을 실시했으며, 미군과 경찰들이 여기서 시위자들을 진압했고, 이 시위에서 박정희의 형, 박상희가 사망한다. 이에 앙심을 품은 박정희는 조선노동당에 들어가 자신의 군경력을 바탕으로 자기가 직접 프락치를 지휘해 자신이 복무해 잘 알던 국경수비대에 침투하고, 여순 반란사건에 가담했다.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백선엽의 도움으로 구사일생 풀려난다. 때맞춰 전쟁이 일어났고 다시 군인이 된다.

반란과 집권[편집]

리승만이 한국에서 도망가고 의원내각제가 시작된다. 그 후 윤보선 대통령 당시인 1961년, 장면이란 사람이 내각의 실권을 쥔 국무총리였다. 이 이야기는... 그 이야기다.(This is...this is.) 자기 따까리가 좀 있던 박정희는 국정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나라를 갖기 위해 찬스만 노리고 있었다. 4.19혁명 1주기 이후 민주화를 요구하는 궐기가 곳곳에서 일어나자 결국 사회혼란이란 명목으로 군을 일으켜 전차를 몰고 곧바로 서울을 점령해버린다. 그 동안 장면은 가족들과 수녀원에 숨어 미대사관에 열심히 도와달라고 했는데...결국 씹혔다. 미국은 자유주의고 민주주의고 관심이 없고 자기네 나라에 도움이 되는 편에 선다면 그게 군사쿠데타든 뭐든 상관을 안하거나 오히려 지원한다. 남베트남도 그랬고.

혼란한 사회를 안정시킨다며 매우 여유롭게 집권한다. 몇 차례 온갖 비겁한 짓으로 개헌해서 3번에 걸쳐 대통령을 한다.

유신[편집]

김대중과 빠듯하게 대선에서 이긴 박정희는 대통령이 하고싶어서 미쳐갖고 1971년 10월 17일, 통일을 명분으로 국회를 해산시키고 정치인들을 줘 패며, 흔한 군부의 계엄령을 선포한다. 여기서 긴급조치도 한다. 그리고 또 개헌한다! 그리고 모든 나라의 업무를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전인대 스러운 기구에서 하게 된다. 이는 전두환도 비슷하게 한다. 그래서 이 사람이 통일을 했는지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알고 있다.

Bang Bang Bang[편집]

유신 8년 째, 경호실장(하지만 박정희의 총애로 막강한 권력이 있던)이나 하던 차지철의 개나댐성과 박정희 후빨에 엄밀히 정권의 2인자인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이 체제에 회의를 느낀다. 1979년 10월 26일, 삽교천 행사에서 박정희한테 이쁨받고 싶었던 차지철에게 박정희 앞에서 심하게 쿠사리 까여 가뜩이나 빡쳐있는 김재규는 결국 행사 후 박정희의 연회에 초대 받아 참석해 대국적으로 박정희를 쏴서 죽여버린다. 박정희는 이렇게 죽었다.

가족관계[편집]

  • 배우자: 김호남(이혼)
  • 딸: 박재옥
  • 배우자: 육영수
  • 아들: 박지만
  • 딸: 박근혜
  • 딸: 박근령(박근영, 박서영)

사망[편집]

박정희는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권총에 살해되었으며 장례는 국장으로 치뤄졌다. 그의 묘소는 현충원에 위치한다.

관련 항목[편집]

Politicians.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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