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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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처음은 世宗御製訓民正音 製(제)는 글을 지음이니, 御製(어제)는 임금께서 지으신 글이다. 訓(훈)은 가르침이고, 民(민)은 百姓(백성)이고, 音(음)은 소리니, 訓民正音(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정한 소리라. 라고 써있다. 구성은 옛 서당에서 구결을 달 듯이 한자 옆칸 마다마다 훈민정음으로 소리를 표시했고, 그 한문 중간중간에 토를 달아 한문 문장의 이해력을 높였으며, 한자어에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따로 위와같이 훈민정음으로 설명해 놓았다. 예를 들면 "이호중국하야" 그 옆에 "이는 다름이고, 호는 아무거에 붙어 쓰는 자, 중국은 황제께서 계신 나라다. 우리나라에서 평소에 강남이라 말 하는 곳." 이렇게 설명을 다 붙여 놓았으며, 고 옆에 "중국과 달라" 라고 간결히 한글패치 했다. 이로써 사용법은 물론이고, 이 글의 내용으로 왜 이 글을 만들고 이 책을 썼는가가(백성들의 문자 정보 전달 용이 및 자신의 글의 예와 같이 현토에 적극적으로 사용, 한문교육의 편의) 낱낱히 적혀있어, 책으로도 아주 좋은 책으로 꼽힌다.
 
제일 처음은 世宗御製訓民正音 製(제)는 글을 지음이니, 御製(어제)는 임금께서 지으신 글이다. 訓(훈)은 가르침이고, 民(민)은 百姓(백성)이고, 音(음)은 소리니, 訓民正音(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정한 소리라. 라고 써있다. 구성은 옛 서당에서 구결을 달 듯이 한자 옆칸 마다마다 훈민정음으로 소리를 표시했고, 그 한문 중간중간에 토를 달아 한문 문장의 이해력을 높였으며, 한자어에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따로 위와같이 훈민정음으로 설명해 놓았다. 예를 들면 "이호중국하야" 그 옆에 "이는 다름이고, 호는 아무거에 붙어 쓰는 자, 중국은 황제께서 계신 나라다. 우리나라에서 평소에 강남이라 말 하는 곳." 이렇게 설명을 다 붙여 놓았으며, 고 옆에 "중국과 달라" 라고 간결히 한글패치 했다. 이로써 사용법은 물론이고, 이 글의 내용으로 왜 이 글을 만들고 이 책을 썼는가가(백성들의 문자 정보 전달 용이 및 자신의 글의 예와 같이 현토에 적극적으로 사용, 한문교육의 편의) 낱낱히 적혀있어, 책으로도 아주 좋은 책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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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해에서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든 이유는 우리가 알다시피 한국어는 한자로 표기 하기에 적절치 않다는 것과, 이런 난해함 때문에 배우지 못한 백성들의 문자생활에 한계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지배계층, 그것도 왕이 큰 제국의 문화를 미루고 독자적인 문자를 백성을 위해 만든 것은 세계적으로도 사례가 거의 유일하다. 또한 그 창제의 이유와 원리를 자세히 설명하고 백성들에게 문자생활을 베푸려는 의지가 기록으로 남아있는 것 또한 유일하다.
  
 
==혜례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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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각형 꼴에다가 삐침과 파임을 전혀 배제한 디자인으로, 먹과 붓을 사용해 글을 쓰는것은 물론 목탄과 종이, 나뭇가지와 흙판 등 여러 것들로 글자를 쓸수 있게 간결한 모양으로 만들어놨다. 아무런 장식 없이 획 하나하나가 소리를 내기 위한 기호로 쓰이는 것이 가장 눈여겨볼만 하다. 당시로썬 생각해내기 힘든 모더니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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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각형 꼴에다가 삐침과 파임을 전혀 배제한 디자인으로, 먹과 붓을 사용해 글을 쓰는것은 물론 목탄과 종이, 나뭇가지와 흙판 등 여러 것들로 글자를 쓸수 있게 간결한 모양으로 만들어놨다. 자형은 옛 전서체를 모방했다고 한다. 아무런 장식 없이 획 하나하나가 소리를 내기 위한 기호로 쓰이는 것이 가장 눈여겨볼만 하다. 당시로썬 생각해내기 힘든 모더니즘이다.
  
 
[[분류: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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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판 : 2019년 7월 14일 (일) 19:48

대하여[편집]

세종께서 만든 한글 오픈 베타 릴리즈.

옛글[편집]

자모 합쳐 스물 여덟 자를 조합해 많은 소리를 글로 적을 수 있다. 현대에 쓰지 않는 글자들이 많이 있다. 세모모양이나 이응에 꼭지가 달리거나 히읗에 위의 획이 하나 없거나 쌍자음을 쓰는 요령이 지금과 많이 다르고, 모음 또한 아래아나 조합된 모음들은 지금과 많이 다른 모습으로 나온다.

훈민정음 언해[편집]

한글의 특징중 하나는 누가, 언제, 어떻게, 왜?? 만들었는지 자세히 기록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한글날을 지낼 수 있는 이유가 한글이 언제 반포되었는지 기록에 있기 때문이다. 그 기록 가운데 하나가 바로 훈민정음 언해이다. 세종 본인이 직접 저술했다고 한다. 글을 만든 사람이 직접 훈민정음의 사용례와 그 철학을 써 담아놔서 브라이언 커니핸데니스 리치의 The C Programming language와 비슷할까?

제일 처음은 世宗御製訓民正音 製(제)는 글을 지음이니, 御製(어제)는 임금께서 지으신 글이다. 訓(훈)은 가르침이고, 民(민)은 百姓(백성)이고, 音(음)은 소리니, 訓民正音(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정한 소리라. 라고 써있다. 구성은 옛 서당에서 구결을 달 듯이 한자 옆칸 마다마다 훈민정음으로 소리를 표시했고, 그 한문 중간중간에 토를 달아 한문 문장의 이해력을 높였으며, 한자어에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따로 위와같이 훈민정음으로 설명해 놓았다. 예를 들면 "이호중국하야" 그 옆에 "이는 다름이고, 호는 아무거에 붙어 쓰는 자, 중국은 황제께서 계신 나라다. 우리나라에서 평소에 강남이라 말 하는 곳." 이렇게 설명을 다 붙여 놓았으며, 고 옆에 "중국과 달라" 라고 간결히 한글패치 했다. 이로써 사용법은 물론이고, 이 글의 내용으로 왜 이 글을 만들고 이 책을 썼는가가(백성들의 문자 정보 전달 용이 및 자신의 글의 예와 같이 현토에 적극적으로 사용, 한문교육의 편의) 낱낱히 적혀있어, 책으로도 아주 좋은 책으로 꼽힌다.

언해에서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든 이유는 우리가 알다시피 한국어는 한자로 표기 하기에 적절치 않다는 것과, 이런 난해함 때문에 배우지 못한 백성들의 문자생활에 한계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지배계층, 그것도 왕이 큰 제국의 문화를 미루고 독자적인 문자를 백성을 위해 만든 것은 세계적으로도 사례가 거의 유일하다. 또한 그 창제의 이유와 원리를 자세히 설명하고 백성들에게 문자생활을 베푸려는 의지가 기록으로 남아있는 것 또한 유일하다.

혜례본[편집]

보다 심층적으로 왜 만들었냐 보다 어떻게 만들어졌냐에 촛점이 맞춰진 책으로 입모양에서 나오는 소리등을 상세히 연구한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져, 현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명서이다. 혜례본 초간본은 간송미술관에 보관되어 있다.

보급[편집]

높은 양반들은 세종이 훈민정음을 배포하는걸 반대했는데, 그 이유로는 중국이 조선놈들도 역시 황제의 나라와 다른 말과 글을 쓰는 오랑캐구나 라고 업신여길까봐 라도 진심으로 믿고 있었던 것이 거의 대다수였다. 정황상 아랫것들이 글을 배움으로써 기득권이 무너질까봐라는 생각은 많이 없던 모양이다. 그들은 당연히도 벼슬을 하기 위해 한문을 배웠고, 앞으로도 벼슬을 하려면 한문을 배워야 할것으로 생각했던것 같다. 하지만 세종은 신료들의 반대를 모두 씹고(신하 면전에다 욕도 했다고 한다.) 반포를 강행했다.

하지만 세종의 뜻과 다르게 보급은 못배운 백성들이 아닌 양반댁 자녀와 마나님, 빠른 속도로 글을 쓰고 빨리 읽고 작업을 해야했던 중인계층, 군대에서 잘 쓰였다. 이상한 글자로 소통하는 걸 으이구 천것들ㅉㅉ하고 봤을 대감님들이 떠오른다. 다만 선왕께서 지은 글을 막 깔순 없었을지도.

디자인[편집]

정사각형 꼴에다가 삐침과 파임을 전혀 배제한 디자인으로, 먹과 붓을 사용해 글을 쓰는것은 물론 목탄과 종이, 나뭇가지와 흙판 등 여러 것들로 글자를 쓸수 있게 간결한 모양으로 만들어놨다. 자형은 옛 전서체를 모방했다고 한다. 아무런 장식 없이 획 하나하나가 소리를 내기 위한 기호로 쓰이는 것이 가장 눈여겨볼만 하다. 당시로썬 생각해내기 힘든 모더니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