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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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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공산주의의 첫번째 승리는 러시아에서였다. 제정러시아 말기에는 황실이 아주 병신같은 짓들만 골라서하고, 쪽바리들에게 전쟁에서 진 이후 한번도 전쟁에서 잘 싸운 적이 없게 되었다. 게다가 1차대전 때문에 화폐를 계속 찍어대서 인플레이션이 크게 발생해서 더 똥망이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귀족들과 브루주아들은 눈치없이 노동자들을 굴리면서 지들 배떼지만 채우기 급급했다. 결국 시민들이 뭉쳐서 황제를 내쫓아버리고 공화정과 함께 선출된 시민단체가 그들의 의결을 최종확정 하는 방식의 새로운 임시정부 세웠다. 근데도 상황은 [[영 좋지 않은|영 좋지]] 않았다. 특히 임시정부는 다 굶어죽게 생긴 마당에 전쟁을 계속하면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이것이 블라디미르 레닌에겐 기회였다. 그의 특유한 카리스마로 빡침의 연속이던 시민들에게 임시정부 꺼지고 시민단체가 모든 권력을 잡게하자며 그와 함께 공산주의를 선전했고, 시민들이 인기 아이돌 레닌쨩의 말을 잘 들어서 조직력이 좋아 그 길로 다 털어버린다. 그리고 새로운 정부를 세우는데, 그것이 소비에트 공화국이다. 소비에트라는 뜻이 위의 선출된 시민들의 의회란 뜻이다. 짧은 내전을 거쳐 알박기에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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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의 첫번째 승리는 러시아에서였다. 제정러시아 말기에는 황실이 아주 병신같은 짓들만 골라서하고, 쪽바리들에게 전쟁에서 진 이후 한번도 전쟁에서 잘 싸운 적이 없게 되었다. 게다가 1차대전 때문에 화폐를 계속 찍어대서 인플레이션이 크게 발생해서 더 똥망이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귀족들과 브루주아들은 눈치없이 노동자들을 굴리면서 지들 배떼지만 채우기 급급했다. 결국 시민들이 뭉쳐서 황제를 내쫓아버리고 공화정과 함께 선출된 시민단체가 그들의 의결을 최종확정 하는 방식의 새로운 임시정부 세웠다. 근데도 상황은 [[영 좋지 않은|영 좋지]] 않았다. 특히 임시정부는 다 굶어죽게 생긴 마당에 전쟁을 계속하면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이것이 블라디미르 레닌에겐 기회였다. 그의 특유한 카리스마로 빡침의 연속이던 시민들에게 임시정부 꺼지고 시민단체가 모든 권력을 잡게하자며 그와 함께 공산주의를 선전했고, 시민들이 인기 아이돌 레닌쨩의 말을 잘 들어서 조직력이 좋아 그 길로 다 털어버린다. 그리고 새로운 정부를 세우는데, 그것이 소비에트 공화국이다. 소비에트라는 뜻이 위의 선출된 시민들의 의회란 뜻이다. 짧은 내전을 거쳐 알박기에 성공한다. 이내 동유럽 일대에 자신들이 쟁취한 사회주의 체제 정부를 선전하고 소비에트로 포섭하기에 이르러 거대한 연방의 일당체제 국가를 만드니 그것이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이다. 블라디미르 레닌 이후 스탈린은 레닌의 사상도 아니고, 마르크스의 사상도 아닌, 그냥 독재자 그 자체가 되어서 공산주의를 표명하며 사람을 죽이고 갈아 생산물을 만들어내고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였다. 이런 소련은 고르바초프 시기 전쟁비용에 저유가에 눌리며, 권력까지 흔들리더니 곧바로 해체되었다. 그리고 러시아는 자본주의 국가가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
중국에선 역시 일본에게 천지신명나개 털리고 있고, 농민들이 국민당과 각지 군벌들이란 이중권력에 눌려 매우 어렵게 살고있어 대중의 불만이 상당했다. 이 상황에서 여러 중국의 사상가들이 상해에 모여 중국공산당을 창당하고 모택동 등 말빨 좋은 인물들이 대중을 선동하며 차차 세력을 키워나갔다. 심상치않게 본 국민당 장개석은 이들을 밟으려했고 결국엔 싸운다. 일본 때문에 한번 멈췄다가 또 싸웠다. 원래는 국민당이 규모로 보나 뭐로 보나 이겼어야 정상인데, 대중이 공산당의 대장정이라는 일종의 물리적 선전전을 통해 선동되어 점점 부패해가는 국민당에 등을 돌렸다. 결국 공산당이 승리해 1949년 국민당이 [[대만]]으로 토끼고 모택동을 중국공산당의 주석으로 한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워 대륙을 해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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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선 역시 일본에게 천지신명나개 털리고 있고, 농민들이 국민당과 각지 군벌들이란 이중권력에 눌려 매우 어렵게 살고있어 대중의 불만이 상당했다. 이 상황에서 여러 중국의 사상가들이 상해에 모여 중국공산당을 창당하고 모택동 등 말빨 좋은 인물들이 대중을 선동하며 차차 세력을 키워나갔다. 심상치않게 본 국민당 장개석은 이들을 밟으려했고 결국엔 싸운다. 일본 때문에 한번 멈췄다가 또 싸웠다. 원래는 국민당이 규모로 보나 뭐로 보나 이겼어야 정상인데, 대중이 공산당의 대장정이라는 일종의 물리적 선전전을 통해 선동되어 점점 부패해가는 국민당에 등을 돌렸다. 결국 공산당이 승리해 1949년 국민당이 [[대만]]으로 토끼고 모택동을 중국공산당의 주석으로 한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워 대륙을 해방시켰다. 이렇게 어처구니 없이 대륙을 통일한 모택동은 권력에 집착적인 면모를 보였고, 서슬퍼런 반대파 숙청과 희한한 관료제에 더불어 자신들이 주권이 있는 정부를 처음 맛 본 공산주의 뽕에 찬 일반시민들에게 까지 자신의 권위를 나눠 주어 혁명이라고 [[문화대혁명|낡은 것을 파괴]]시키라고 하고, 각 지방에 자신에 대한 충성의 지표로 철을 할당량을 줘서 무리하게 생산하게 하는 등, 여러가지 개뻘짓으로 등소평 이전까지 중국이라는 커다란 대륙을 멸망 근처까지 몰고 갔다. 결국 등소평은 원래의 공산주의에는 지극히 핀트가 나가있는, 공산당의 막강한 권력 아래에서 시장경제를 개방한 이상한 체제를 도입하게 된다.
  
 
===쿠바===
 
===쿠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2차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되었다. 한반도는 해방 이후 38선으로 나뉘어 이북으로 소비에트 연방이, 이남으로 미국이 신탁통치를 하고 있었다. 빨리 조선만의 독립정부를 출범 해야 어떻게 코쟁이 새끼들이 나갈텐데 당시 지식인들과 사상가들이 모여서 토론을 하다가 자꾸 불발이 되서 결국 남한은 친미 국가로서 단독정부를 38선 이남에 세운다. 북한도 기다렸다는 듯이 김일성을 필두로한 조선노동당이 이북에 공산주의로 한 사회주의 정부를 세운다. [[한국전쟁|내전을 걸쳐]] 휴전선을 확정짓고 이북을 잠시 동안 해방시켰지만, 정적을 숙청하고 당권을 굳게 잡은 김일성파는 시민들을 착취해 자신의 부를 축적하며 호의호식하는 봉건제국가로 되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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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되었다. 한반도는 해방 이후 38선으로 나뉘어 이북으로 소비에트 연방이, 이남으로 미국이 신탁통치를 하고 있었다. 빨리 조선만의 독립정부를 출범 해야 어떻게 코쟁이 새끼들이 나갈텐데 당시 지식인들과 사상가들이 모여서 토론을 하다가 자꾸 불발이 되서 결국 남한은 친미 국가로서 단독정부를 38선 이남에 세운다. 북한도 기다렸다는 듯이 김일성을 필두로한 조선노동당이 이북에 공산주의로 한 사회주의 정부를 세운다. [[한국전쟁|내전을 걸쳐]] 휴전선을 확정짓고 이북을 잠시 동안 해방시켰지만, 정적을 숙청하고 당권을 굳게 잡은 김일성파는 시민들을 착취해 자신의 부를 축적하며 호의호식하는 봉건제국가로 되돌린다. 김일성 초기 북한지역은 전쟁피해가 사실 매우 적은 수준이였기 때문에, 소련의 지원과 함께 빠르게 피해를 복구했고,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할 수 있도록, 전체주의적 공산주의 비슷한 사상을 대중에게 전파하는데, 이것이 '''주체사상'''이다. 소련이 점차 다른 사회주의 국가는 커녕, 지네들 코가 석자인지라 북한 지원이 점차 끊기고, 김일성 체제의 방만한 국가경영으로 김일성 사망 직후, 바로 '고난의 행군' 이라는, 전 국가적 기근과 경제파탄에 시달리게 된다. 그 사이 소련은 해체하고, 같은 공산당 국가인 중국도 북한을 도울 팔자가 못 되고, 미국과 한참 잘 나가기 시작한 대한민국, 일본 같은 주변의 제 1세계는 모두 북한과 무역을 거부하고 있고, 내부 사정은 개판 또 개판인 이 상황을 모두 떠 안아 버린 김정일은 이 모든 상황을 뒤집을 전략으로,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자신의 체제를 유지하며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시도를 하지 않고, '핵무기를 만들어 미국과 남한 등지에서 삥을 뜯어보자' 라는 선택을 하고 만다. 실패국가의 온상을 만들어 놓고 죽은 김정일을 세습 받은 김정은 또한 자신의 불안한 입장과 권력구도로 북한 체제를 완전히 바꾸기는 어려웠다. 결국 무자비한 숙청과 대중 선전으로 자신과 자신 주변의 권력을 확고히 굳혀놓은 김정은은 이제 시장경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하는데, 그 첫 단추로써 미국과의 무역을 통상화 하고자 하고 있다. 물론 전략은 선대부터 시작해 자신의 때에 완성한 핵무기이다. 당연히 협상이 될 리가 없다. 미국은 핵무기를 버리라고 할 게 당연하고, 핵무기를 버리면 자기 권력이 흔들린다.
  
 
===[[베트남]]===
 
===[[베트남]]===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일본에게 잠시 뺏겼지만 이내 2차세계대전이 끝나 일본이 도망가고 프랑스는 다시 이 나라를 먹으려고 한다. 전 후 해방된 여느 나라처럼 전후에 분단이 되는데 북은 중화민국이, 남은 영국이 신탁통치를 하게 된다. 이 때 호치민이 베트남 북부 하노이에 공산당 정부를 수립하고, 남쪽에는 프랑스가 베트남 남부에 주둔한 영국과 함께 괴뢰정부를 세운다. 식민지배를 당했던 사람들이 프랑스를 반길 일은 없었고 결국 프랑스가 나가고 친프랑스 정치인 응오지디엠이 부패한 왕을 폐위하자는 구호를 외치며 선거로 왕을 끌어내리고 미국을 등에 업고 공화국을 세운다.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은 내전을 겪다가 제네바 협의에 의해 중재되고 분단된다. 그리고 남북 총선으로 통일을 결정하자고 협의를 했지만, 상식적으로 명망높은 독립운동가 선생님 대 친불파 갑툭튀 구도 에서 북베트남이 이길게 뻔했기에, 이를 좌시할 수 없던 미국은 북베트남 정벌에 들어간다. 하지만 북베트남은 미국의 침략을 방어하고 남베트남 점령에 성공해 통일을 완성하고 현재의 공화사회주의 월남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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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일본에게 잠시 뺏겼지만 이내 2차세계대전이 끝나 일본이 도망가고 프랑스는 다시 이 나라를 먹으려고 한다. 전 후 해방된 여느 나라처럼 전후에 분단이 되는데 북은 중화민국이, 남은 영국이 신탁통치를 하게 된다. 이 때 호치민이 베트남 북부 하노이에 공산당 정부를 수립하고, 남쪽에는 프랑스가 베트남 남부에 주둔한 영국과 함께 괴뢰정부를 세운다. 식민지배를 당했던 사람들이 프랑스를 반길 일은 없었고 결국 프랑스가 나가고 친프랑스 정치인 응오지디엠이 부패한 왕을 폐위하자는 구호를 외치며 선거로 왕을 끌어내리고 미국을 등에 업고 공화국을 세운다.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은 내전을 겪다가 제네바 협의에 의해 중재되고 분단된다. 그리고 남북 총선으로 통일을 결정하자고 협의를 했지만, 상식적으로 명망높은 독립운동가 선생님 대 친불파 갑툭튀 구도 에서 북베트남이 이길게 뻔했기에, 이를 좌시할 수 없던 미국은 북베트남 정벌에 들어간다. 하지만 북베트남은 미국의 침략을 방어하고 남베트남 점령에 성공해 통일을 완성하고 현재의 공화사회주의 월남을 세운다.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베트남을 통일한 공화 사회주의 베트남은 동남아시아 정벌을 꿈꿨으나 캄보디아 빨치산들의 격렬한 항쟁과 이 전선에 중국까지 끼어들어 공산주의라는 경직된 경제체제로는 도저히 전비가 감당이 안되었다. 꼭 이런 상황에선 나라가 전비를 채우려고 돈을 많이 찍어내고, 그러다가 경제가 파탄난다. 이런 상황에 과거 남베트남 시절 먹물들이 뗏목 타고 미국으로 다수 떠나는 일 까지 벌어진다. 이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자 결국 당시 월남공산당 주석이였던 응우옌 반 린은 중국의 등소평의 사례처럼 일당독재 권력을 유지하며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해 어느 정도 가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나==

현재 판 : 2019년 9월 12일 (목) 07:10

대하여[편집]

칼 마르크스의 사상으로부터 차근차근 생겨난 사상. 분파가 참 많지만 주요한 골자는 공장이나 밭같은 생산의 원천이 되는 수단을 독점하고 생산자들이 일구어낸 부를 갈취하는 배부른 강도들을 죽이고 정부와 계급이 소멸되면, 생산수단을 모든 사람들의 것으로 두고 필요한 것들을 사람들 스스로 만들면서 일하는 만족도 다시 느끼고 사람들끼리 부족한게 있으면 서로 나누고 받으면서 행복하게 살자는 것이다.

사례[편집]

“한 유럽이 전 유령을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럽이. 전 유령의 낡은 신성이 이 유럽하나 잡자고 세력동맹을 결연했다.”

선언당 공산, 프리드리히 엥겔스, 칼 마르크스 저

빠리코뮌[편집]

이 사상이 처음 실현된 곳은 프랑스 파리였다. 프랑스가 프로이센에 털리고 왕의 위신이 땅에 떨어져 공화정으로 바뀌었는데 이 새끼들도 프로이센에 굽신굽신 거리면서 개짓거리를 했다. 혁명의 불씨를 틔운 것은 프로이센에 대항하는 의병들에게 무장해제를 명령한 것이였다. 시민들과 사상가들은 개빡처서 다 털어버리고 파리코뮌이라는 공산주의 정부를 세웠다. 그러나 우두머리가 확실하지 않았던 이들은 분열했고, 베르사이유 정부 군에 털려서 70일만에 폭망했다. 인터내셔널이 이때 만들어졌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편집]

공산주의의 첫번째 승리는 러시아에서였다. 제정러시아 말기에는 황실이 아주 병신같은 짓들만 골라서하고, 쪽바리들에게 전쟁에서 진 이후 한번도 전쟁에서 잘 싸운 적이 없게 되었다. 게다가 1차대전 때문에 화폐를 계속 찍어대서 인플레이션이 크게 발생해서 더 똥망이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귀족들과 브루주아들은 눈치없이 노동자들을 굴리면서 지들 배떼지만 채우기 급급했다. 결국 시민들이 뭉쳐서 황제를 내쫓아버리고 공화정과 함께 선출된 시민단체가 그들의 의결을 최종확정 하는 방식의 새로운 임시정부 세웠다. 근데도 상황은 영 좋지 않았다. 특히 임시정부는 다 굶어죽게 생긴 마당에 전쟁을 계속하면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이것이 블라디미르 레닌에겐 기회였다. 그의 특유한 카리스마로 빡침의 연속이던 시민들에게 임시정부 꺼지고 시민단체가 모든 권력을 잡게하자며 그와 함께 공산주의를 선전했고, 시민들이 인기 아이돌 레닌쨩의 말을 잘 들어서 조직력이 좋아 그 길로 다 털어버린다. 그리고 새로운 정부를 세우는데, 그것이 소비에트 공화국이다. 소비에트라는 뜻이 위의 선출된 시민들의 의회란 뜻이다. 짧은 내전을 거쳐 알박기에 성공한다. 이내 동유럽 일대에 자신들이 쟁취한 사회주의 체제 정부를 선전하고 소비에트로 포섭하기에 이르러 거대한 연방의 일당체제 국가를 만드니 그것이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이다. 블라디미르 레닌 이후 스탈린은 레닌의 사상도 아니고, 마르크스의 사상도 아닌, 그냥 독재자 그 자체가 되어서 공산주의를 표명하며 사람을 죽이고 갈아 생산물을 만들어내고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였다. 이런 소련은 고르바초프 시기 전쟁비용에 저유가에 눌리며, 권력까지 흔들리더니 곧바로 해체되었다. 그리고 러시아는 자본주의 국가가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편집]

중국에선 역시 일본에게 천지신명나개 털리고 있고, 농민들이 국민당과 각지 군벌들이란 이중권력에 눌려 매우 어렵게 살고있어 대중의 불만이 상당했다. 이 상황에서 여러 중국의 사상가들이 상해에 모여 중국공산당을 창당하고 모택동 등 말빨 좋은 인물들이 대중을 선동하며 차차 세력을 키워나갔다. 심상치않게 본 국민당 장개석은 이들을 밟으려했고 결국엔 싸운다. 일본 때문에 한번 멈췄다가 또 싸웠다. 원래는 국민당이 규모로 보나 뭐로 보나 이겼어야 정상인데, 대중이 공산당의 대장정이라는 일종의 물리적 선전전을 통해 선동되어 점점 부패해가는 국민당에 등을 돌렸다. 결국 공산당이 승리해 1949년 국민당이 대만으로 토끼고 모택동을 중국공산당의 주석으로 한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워 대륙을 해방시켰다. 이렇게 어처구니 없이 대륙을 통일한 모택동은 권력에 집착적인 면모를 보였고, 서슬퍼런 반대파 숙청과 희한한 관료제에 더불어 자신들이 주권이 있는 정부를 처음 맛 본 공산주의 뽕에 찬 일반시민들에게 까지 자신의 권위를 나눠 주어 혁명이라고 낡은 것을 파괴시키라고 하고, 각 지방에 자신에 대한 충성의 지표로 철을 할당량을 줘서 무리하게 생산하게 하는 등, 여러가지 개뻘짓으로 등소평 이전까지 중국이라는 커다란 대륙을 멸망 근처까지 몰고 갔다. 결국 등소평은 원래의 공산주의에는 지극히 핀트가 나가있는, 공산당의 막강한 권력 아래에서 시장경제를 개방한 이상한 체제를 도입하게 된다.

쿠바[편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편집]

2차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되었다. 한반도는 해방 이후 38선으로 나뉘어 이북으로 소비에트 연방이, 이남으로 미국이 신탁통치를 하고 있었다. 빨리 조선만의 독립정부를 출범 해야 어떻게 코쟁이 새끼들이 나갈텐데 당시 지식인들과 사상가들이 모여서 토론을 하다가 자꾸 불발이 되서 결국 남한은 친미 국가로서 단독정부를 38선 이남에 세운다. 북한도 기다렸다는 듯이 김일성을 필두로한 조선노동당이 이북에 공산주의로 한 사회주의 정부를 세운다. 내전을 걸쳐 휴전선을 확정짓고 이북을 잠시 동안 해방시켰지만, 정적을 숙청하고 당권을 굳게 잡은 김일성파는 시민들을 착취해 자신의 부를 축적하며 호의호식하는 봉건제국가로 되돌린다. 김일성 초기 북한지역은 전쟁피해가 사실 매우 적은 수준이였기 때문에, 소련의 지원과 함께 빠르게 피해를 복구했고,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할 수 있도록, 전체주의적 공산주의 비슷한 사상을 대중에게 전파하는데, 이것이 주체사상이다. 소련이 점차 다른 사회주의 국가는 커녕, 지네들 코가 석자인지라 북한 지원이 점차 끊기고, 김일성 체제의 방만한 국가경영으로 김일성 사망 직후, 바로 '고난의 행군' 이라는, 전 국가적 기근과 경제파탄에 시달리게 된다. 그 사이 소련은 해체하고, 같은 공산당 국가인 중국도 북한을 도울 팔자가 못 되고, 미국과 한참 잘 나가기 시작한 대한민국, 일본 같은 주변의 제 1세계는 모두 북한과 무역을 거부하고 있고, 내부 사정은 개판 또 개판인 이 상황을 모두 떠 안아 버린 김정일은 이 모든 상황을 뒤집을 전략으로,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자신의 체제를 유지하며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시도를 하지 않고, '핵무기를 만들어 미국과 남한 등지에서 삥을 뜯어보자' 라는 선택을 하고 만다. 실패국가의 온상을 만들어 놓고 죽은 김정일을 세습 받은 김정은 또한 자신의 불안한 입장과 권력구도로 북한 체제를 완전히 바꾸기는 어려웠다. 결국 무자비한 숙청과 대중 선전으로 자신과 자신 주변의 권력을 확고히 굳혀놓은 김정은은 이제 시장경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하는데, 그 첫 단추로써 미국과의 무역을 통상화 하고자 하고 있다. 물론 전략은 선대부터 시작해 자신의 때에 완성한 핵무기이다. 당연히 협상이 될 리가 없다. 미국은 핵무기를 버리라고 할 게 당연하고, 핵무기를 버리면 자기 권력이 흔들린다.

베트남[편집]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일본에게 잠시 뺏겼지만 이내 2차세계대전이 끝나 일본이 도망가고 프랑스는 다시 이 나라를 먹으려고 한다. 전 후 해방된 여느 나라처럼 전후에 분단이 되는데 북은 중화민국이, 남은 영국이 신탁통치를 하게 된다. 이 때 호치민이 베트남 북부 하노이에 공산당 정부를 수립하고, 남쪽에는 프랑스가 베트남 남부에 주둔한 영국과 함께 괴뢰정부를 세운다. 식민지배를 당했던 사람들이 프랑스를 반길 일은 없었고 결국 프랑스가 나가고 친프랑스 정치인 응오지디엠이 부패한 왕을 폐위하자는 구호를 외치며 선거로 왕을 끌어내리고 미국을 등에 업고 공화국을 세운다.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은 내전을 겪다가 제네바 협의에 의해 중재되고 분단된다. 그리고 남북 총선으로 통일을 결정하자고 협의를 했지만, 상식적으로 명망높은 독립운동가 선생님 대 친불파 갑툭튀 구도 에서 북베트남이 이길게 뻔했기에, 이를 좌시할 수 없던 미국은 북베트남 정벌에 들어간다. 하지만 북베트남은 미국의 침략을 방어하고 남베트남 점령에 성공해 통일을 완성하고 현재의 공화사회주의 월남을 세운다.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베트남을 통일한 공화 사회주의 베트남은 동남아시아 정벌을 꿈꿨으나 캄보디아 빨치산들의 격렬한 항쟁과 이 전선에 중국까지 끼어들어 공산주의라는 경직된 경제체제로는 도저히 전비가 감당이 안되었다. 꼭 이런 상황에선 나라가 전비를 채우려고 돈을 많이 찍어내고, 그러다가 경제가 파탄난다. 이런 상황에 과거 남베트남 시절 먹물들이 뗏목 타고 미국으로 다수 떠나는 일 까지 벌어진다. 이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자 결국 당시 월남공산당 주석이였던 응우옌 반 린은 중국의 등소평의 사례처럼 일당독재 권력을 유지하며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해 어느 정도 가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나[편집]

지구 상엔 많은 나라들이 공산주의였는데 다 망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마르크스가 말한 것을 철저히 반대로 실행했다는 것이다. 그럼 공산주의가 아니잖아.